올림픽 트레킹로드 팔도 제일의 울창한 소나무 숲 나그네도 바람도 잠시 쉬어가네
(11) 올림픽 아리바우길 7코스 -

◇위부터 강릉 보현사를 지나 어명정 방향으로 가다 보면 능선을 따라 금강송과 참나무류가 경계를 이루며 서 있다.하늘을 향해 질주하듯 서 있는 금강송.보현사 버스 종점에서 보현사 방향으로 진행하다 보면 길가에 위치한 성황당이 보인다.강릉 보현사 입구에서 만나는 계곡
보현사 버스 종점~명주군왕릉 11.7㎞
백두대간의 국가대표급 소나무들 만나
광화문 복원에 쓰인 소나무 있던 어명정
갈증 부추기는 술잔바위 등산객 발길 잡아
# 솔향강릉의 진수를 느끼는 코스=올림픽 아리바우길 7코스는 강릉 아리바우길 구간과 같다. 보현사 버스 종점에서 시작해 어명정을 거쳐 술잔바위, 명주군왕릉까지 이르는 11.7㎞구간으로 총 5시간이 소요된다. 이번 구간은 백두대간의 국가대표급 소나무를 만날 수 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 제일의 소나무 생산지는 양백지방이라고 알려져 있다. 양백은 소백산, 태백산을 일컫는 말로 백두대간을 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강원도의 소나무는 강송, 황장목, 적송, 미인송, 금강송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자원으로서 가치를 크게 인정받아 왔다. 그래서 선조들은 삼림자원을 보호하고 자원의 남획을 막기 위해 산삼을 함부로 채취하지 못하게 하는 삼산봉표와 소나무 벌채를 금하기 위해 황장금표도 설치하기도 했다.
소나무는 우리 민족의 생활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자식이 태어나면 나쁜 기운이 집 안으로 들어오지 않게 대문에 소나무 가지를 금줄에 걸어놓는다. 소나무로 지은 한옥에 일생을 살며 삶을 마감하는 장례를 치를 때도 소나무는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하는 등 인생사 대부분을 공유하는 관계다. 척박한 땅에 자라는 소나무는 힘든 일을 이겨내고 늘 푸른 잎을 달고 있어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생명이다.
# 조선의 선비가 좋아한 소나무=조선 시대 선비들은 특히 소나무를 사랑했다. 나라와 임금에 대한 자신의 변하지 않은 충심을 늘 푸른 소나무와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국보 제180호 세한도'는 추사 김정희 선생이 제주도 유배 생활 중 그린 것으로 `사람은 고난을 겪을 때라야 비로소 그 지조의 일관성이나 인격의 고귀함 등이 드러날 수 있다'는 뜻으로 지금까지도 교훈을 주는 대표 작품이다. `歲寒然後知 松栢之後凋(세한연후지 송백지후조·한겨울 추운 날씨가 되어서야 소나무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비로소 알 수 있다)'는 선현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글귀다. 소나무와 잣나무가 추사 김정희 선생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코스 중간에 만나는 어명정은 강릉 소나무의 위상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다. 어명정은 2007년 화재로 인해 소실된 광화문을 복원하기 위해 벌채된 소나무가 서 있는 자리다. 강릉의 소나무는 현재에 이르러서도 어명을 받들고 있다.
1.7㎞ 오르다 보면 능선이 나타난다. 왼쪽은 금강송에 대열을 이루고 있고 오른쪽은 굴참나무와 신갈나무들이 서 있다. 등산로를 사이에 두고 마치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형국으로 서 있는 경치는 서로 다른 경치를 선보이고 있다.
# 강원도를 연 명주군왕=어명정에서 다리 쉼을 청하고 이내 산길로 접어들면 산돼지들의 놀이터가 나온다. 진흙목욕을 하다 바로 자리를 떠난 듯 흔적들이 남아 있다.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면 시선을 끄는 바위가 나타난다. 술잔바위다. 목마른 등산객의 갈증을 부추킨다. 바위 표면에 술잔처럼 생긴 구멍이 3개가 보인다. 배낭에서 생수를 꺼내들고 목을 축인다.
선자령 능선을 따라 풍력발전기가 고개를 내민다. 강릉시를 알리는 홍보 문구가 솔향강릉이다. 대관령에서 선자령으로 그리고 강릉시내를 향해 트레킹 코스가 온통 소나무다. 소나무 안에서 나오는 바람은 솔향을 품고 있다. 피톤치드 가득한 향기가 온몸에 스며든다. 명주군왕릉은 7코스의 마지막 구간이자 8코스의 시작이다. 강원도에 있는 유일한 신라 시대 왕릉이다. 명주군왕릉의 주인공은 강릉김씨의 시조인 김주원으로 신라 태종무열왕의 5대손이며 여러 차례 상대등과 시중을 지낼 정도로 영향력 있는 집안이다. 그의 부친 유정이 명주에 벼슬을 받아 강릉사람과 혼인하게 돼 김주원을 낳았다. 선덕왕이 후계자 없이 죽자 그는 유력한 왕위 계승자였으나 세력에 밀려 강릉으로 물러나게 됐다. 789년 원성왕은 주원에게 양양, 강릉, 삼척, 울진, 평해의 땅을 주고 명주군왕에 임명했다. 강릉의 옛 지명인 명주가 중앙정치에 모습을 드러내는 시작점이 명주군왕릉이며 강원도 기념물 제12호로 지정돼 있다.
글·사진=김남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