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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올림픽아리바우길 중앙일보 특집기사
기획팀2017-12-12조회수 5616

 

 

 

올림픽 아리바우길 5코스 능경봉에서 내다본 대관령 너머 강릉 시내.

 

올림픽 아리바우길 5코스 능경봉에서 내다본 대관령 너머강릉시내.


올림픽 아리바우길은 평창 겨울올림픽이 열리는 강원도의 세 고장을 잇는다. 정선 읍내 시장통에서 시작해 평창의 힘찬 산줄기를 지난 뒤 강릉 경포 바다 앞에서 멈춘다. 모두 9개 코스로 전체 길이는 131.7㎞다. 2015년 조성사업을 시작했고 지난달 14일 강릉에서 첫 개장행사를 치렀다. 예산은 모두 33억원이 들어갔다.
 

올림픽 아리바우길 131.7㎞를 걷다

‘올림픽 아리바우길’이라는 이름은 세 고장에서 비롯됐다. ‘올림픽’은 평창을 가리키며 ‘아리’는 정선아리랑의 고장 정선을 상징한다. ‘바우’는 강원도의 대표적인 트레일(걷기여행 길) 강릉바우길에서 따왔다. 백두대간을 사이에 두고 영서와 영동으로 갈라진 세 고장이 하나의 길로 이어졌다. 올림픽 아리바우길의 가장 큰 의의가 여기에 있다. 각기 다른 세상을 하나로 잇는다는 점에서 길과 올림픽은 닮았다.  
     



 


올림픽 아리바우길 상징. 강원도를 상징하는 새 두루미를 형상화했 고 오륜기에 쓰이는 다섯 가지 색깔을 입혔다.

 

올림픽 아리바우길은 세 고장의 명소를 두루 짚는다. 정선 아리랑시장(정선오일장)·아우라지·정선 레일바이크·안반데기·백두대간·대관령옛길·오죽헌·경포호수·강문해변 등 산과 강, 바다와 호수, 시장과 유적을 아우른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도 두 개(정선아리랑, 강릉단오제)를 거느리고, 한반도의 등뼈 백두대간과 붉은 해 토해내는 동해 바다도 품는다. 강원도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자연이 길에서 고스란하다. 올림픽 아리바우길은 강원도의 오장육부를 후벼 판다.
 
길은 결국 사람의 흔적이어서 올림픽 아리바우길도 우리네 삶이 주인공이다. 아라리 가락에 얹힌 떼꾼의 고단했던 하루, 뼝대(‘절벽’의 정선 사투리) 아래에 사는 정선 사람의 한숨, 해발 1000m 고원에서 배추를 거두는 화전민의 땀, 대관령옛길을 오르내렸던 길손의 설움이 길섶마다 배어 있다. 한 할머니가 죽을 때까지 26년을 쌓았다는 노추산 자락의 돌탑 무더기 앞에서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강원도의 숨은 매력을 두 발로 찾아다닌다는 점에서 올림픽 아리바우길은 새로운 강원도 여행법이자 뜻깊은 관광자원이다.
 
강원도 깊은 산골을 헤집고 다녀서 길이 녹록하지는 않다. 코스를 개척한 ㈔강릉바우길의 이기호 사무국장은 “제주올레가 걷기여행 초보자를 위한 길이라면 올림픽 아리바우길은 중급자를 위한 길”이라고 소개했다. 경험을 말하자면, 힘들지만 재미있다. 9개 코스 중에서 해발 1322m의 노추산을 올랐다 내려오는 3코스가 가장 힘들었다.
 
올림픽이 끝난 뒤를 상상한다. 개·폐막식장은 철거가 확정됐고, 빙상경기장 네 곳도 운명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축제가 끝나면 한바탕 꿈 같았던 추억만 되새길지 모른다. 그래서 올림픽 아리바우길은 소중하다. 사람은 떠나도 길은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도종환 문체부 장관도 “올림픽 아리바우길은 올림픽 기간에는 모두가 즐기는 관광자원이 되고, 올림픽이 끝난 뒤에는 올림픽 유산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경준(1712∼81)이 『산경표』에 썼듯이 길은 걷는 자의 것이다. 길은 사람이 걸을 때만 길로서 유효하다. 장담한다. 올림픽 아리바우길은 아름다운 길이다. 국내 어느 트레일과 견줘도 손색이 없다. 이름에 올림픽을 내건 길이 이름값을 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길은 조성보다 관리가 더 중요하다

[출처: 중앙일보] [올림픽 아리바우길 열리다] 사람과 강산이 하나 된 길, 당신을 초대합니다

 

 

정선 아리랑시장은 정선오일장의 다른 이름이다. 시장은 아직 시골의 정취로 아늑하고 훈훈하다. 길을 시작하기에 시장만큼 어울리는 장소도 없다.

 

 

정선 아리랑시장은 정선오일장의 다른 이름이다. 시장은 아직 시골의 정취로 아늑하고 훈훈하다. 길을 시작하기에 시장만큼 어울리는 장소도 없다.

 

길은 왁자지껄한 시장에서 시작한다. 정선오일장. 지금은 정선 아리랑시장이라고 달리 부른다. 원래는 2일과 7일로 끝나는 날에 열리는 닷새장이었지만 사람이 몰려든 뒤로 매일 장이 선다.
 
정선 아리랑시장은 정선 최고의 관광명소다. 정선군 인구가 3만8000명을 헤아리는데 시장의 연 방문객은 70만 명에 육박한다. 정선 아리랑시장은 전국 문화관광시장의 모범이기도 하다. 시장에 대단한 물건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곤드레·황기·더덕 등 산나물과 약초, 메밀전병·올챙이묵(옥수수묵)·콧등치기국수 등 향토음식이 시장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대신에 사람이 다르다. 노점 좌판에 ‘신토불이증’라고 적힌 이름표를 단 상인들이 죽 앉아 있다. 이름표는 일종의 증명서다. 정선에서 나는 물건을 파는 정선 상인만 찰 수 있다. 문화도, 장사도 결국은 사람이 중요하다는 이치를 서울에서 자동차로 네 시간 거리의 시골 장터가 증명한다.
 
시장에서 나온 길은 정선역을 들렀다가 조양강 물길을 거슬러 오른다. 물길 옆으로 기찻길이 나란하다. 두메산골 정선의 길은 사실 물길과 철길이다. 조양강 물길을 따라 소나무 실은 뗏목이 내려갔고, 정선선 철길을 따라 부침 심했던 탄광의 세월이 흘러갔다. 물길의 내력과 철길의 세월을 되짚다 보면 올림픽 아리바우길의 정선 구간인 1코스와 2코스가 끝난다.
 
정선역에는 하루 네 번 기차가 멈춰 선다. 청량리역과 제천역에서 출발한 무궁화호 열차가 하루 한 번씩 아우라지역을 갔다오는 길에 들러 모두 네 번이다. 정선선은 원래 예미역(지금은 태백선)을 출발해 증산역(지금의 민둥산역)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튼 뒤 정선역∼나전역∼아우라지역을 지나 구절리역까지 이어지는 45.9㎞ 구간을 이른다. 정선이 석탄으로 흥청거리던 시절 정선선은 정선의 젖줄이자 동맥이었다.

 

심심산골 정선은 기차여행의 성지다. 정선역에는 하루 네 번 기차가 멈춰 선다.

 

 

 

심심산골 정선은 기차여행의 성지다. 정선역에는 하루 네 번 기차가 멈춰 선다.

 

지금의 정선선은 기차여행 매니어에게 각별한 구간이다. 정선 아리랑시장을 테마로 삼은 기차여행상품이 국내 패키지여행상품의 스테디셀러고, 나전역과 아우라지역은 간이역 여행의 성지와 같은 곳이다. 무인 기차역인 나전역은 TV CF나 영화·드라마의 단골 촬영지다. 정선선 기차는 이왕이면 함박눈 내리는 겨울날 올라타시라고 권한다. 빨간 열차가 하얀 세상을 거침없이 달리는 장면은 차라리 가슴 벅차다.
 
길은 조양강 물길을 따라 이어진다. 전망대에 올라서니 강 너머 다래뜰이 환하다. 다래뜰은 언덕배기에 들어선 아담한 산골마을이다. 강 건너 산이 벽처럼 서서 마을의 시야를 가린다. ‘뼝대’라는 정선 사투리를 아시는가. 절벽을 뜻하는 ‘뼝대’라는 말이 이 풍경에서 나왔다. ‘정선 하늘은 세 치’라는 말이 전할 만큼 정선은 첩첩산중에 틀어박혀 있다. 하여 정선 사람은 벽처럼 에운 산을 올려다보며 살았다. 정선 사람의 앞을 가로막은 산이, 아니 절벽이 뼝대다. 뼝대라는 단어에는 낮은 데에서 사는 삶의 딱하고 먹먹한 심정이 얹혀 있다.
 
다래뜰은 한반도 지형마을이라고도 불린다. 물길이 급하게 돌아가는 모퉁이 지형에서 한반도를 연상해 붙인 이름이다. 길이 다래뜰 안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다래뜰이 한반도처럼 보이는지는 알 수 없다. 다래뜰 맞은편의 상정바위산(1006m)에서 내려다봐야 반도 모양이 드러난다. 상정바위산 오르는 길이 문곡본동 정류장 근처에서 시작된다. 1코스 중간을 조금 넘은 지점에 있다.
 
여기에서 길은 두 갈래로 갈린다. 다리를 건넌 뒤 조양강을 따라 걷는 강변로 코스(3.7㎞)가 있고, 마을 뒷산을 오르는 새리골 등산로 코스(3.2㎞)가 있다. 길은 강변로 코스가 길지만, 시간은 등산로 코스가 30분쯤 더 걸린다. 1시간 30분은 각오해야 한다. 대신에 솔숲에서 내려다보는 남평들녘의 그윽한 풍광은 땀 흘린 보상으로 모자람이 없다. 갈라졌던 길은 나전역 어귀 북평교에서 다시 만난다. 다리 건너 나전역에서 1코스가 끝난다. 대합실 나무의자에서 아주머니 두어 명이 보따리 베고 누워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출처: 중앙일보] [올림픽 아리바우길 열리다] 정선 장터 지나 조양강 물길 따라 칙칙폭폭 기찻길

 

 

아우라지에서 송천과 골지천 두 물길이 합쳐져 조양강 물길을 이룬다.

 

 

 

 

아우라지에서 송천과 골지천 두 물길이 합쳐져 조양강 물길을 이룬다.

 

2코스는 올림픽 아리바우길 9개 코스 중에서 가장 길다. 유일하게 20㎞가 넘는다. 그래도 난이도는 중간 정도로 매길 수 있다. 대체로 평탄해 부담이 덜하다.
 
2코스도 조양강 물길을 거슬러 오른다. 강과 길은 만났다가 헤어지기를 반복하며 북쪽으로 하염없이 나아간다. 나전역에서 다시 북평교를 건넌 길이 산으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아우라지 어귀까지 이어지는 꽃벼루재 옛길이 시작한다. 7.1㎞ 길이의 완만한 고갯길이다.
 
고갯길은 조양강을 따라 신작로(42번 국도)가 나기 전까지 정선 읍내와 아우라지를 잇는 유일한 통로였다. 고개를 넘는 산길이지만 지금도 널찍한 까닭이다. 군데군데 보이는 시멘트 포장이 옛날에는 이 후미진 산길에 버스가 달렸다는 이력을 증명한다. 인적 뜸한 옛길에 올림픽 아리바우길이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트레일은 길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끊긴 길을 잇는 것이다.
 
길 왼쪽 아래는 가파른 절벽이다. 절벽 아래로 조양강이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1코스에서 말했듯이 정선의 일상은 벼랑 아래의 삶이다. 그러나 이 길은 벼랑 위에 있다. 벼루(베루)가 벼랑의 정선 사투리다. 봄이면 진달래꽃 만발하는 벼랑 고갯길이어서 꽃벼루재다(지루한 벼랑길이 곧 끝난다고 해서 ‘곧벼루재’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뼝대’와 ‘베루’는 같아보이지만 다른 말이다.
 
전망대에 올라서니 조양강 너머 북평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을 뒤편으로 우람한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그 봉우리 가운데 평창올림픽 스키 활강 종목이 열리는 가리왕산 중봉(1433m)도 있다. 꽃벼루재의 맨 마지막 전망대가 마산재다. 마산재에서는 여량들판이 훤히 내다보인다. 첩첩산중 정선에서 그나마 너른 들판을 두른 마을이라 식량사정이 나았다고 한다. 그래서 여량(餘糧)이다. 들판 너머로 아우라지의 세 물줄기가 꿈틀거린다.
 
아우라지는 송천과 골지천 두 물길이 어우러지는 지점이다. 두 물이 합쳐져 한 물을 이루는데 그 물이 여태 걸음을 쫓아왔던 조양강이다. 정선의 길은 물길과 철길이라고 1코스에서 말했었다. 이제 물길 이야기를 할 차례다. 아니다. 이야기보다는 노래가 낫겠다. 정겹고 익숙한 가락이니 따라 불러도 좋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주게/싸릿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정선아리랑.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호이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다. 정선아리랑은 팔도 아리랑의 시원으로 인정돼 2012년 아리랑이 유네스코 유산으로 등재될 때 대표 목록에 올랐다. 정선아리랑은 유래가 분명치 않은 다른 아리랑과 달리 600년이 넘는 내력을 자랑한다. 조선 개국에 반대해 정선까지 숨어들어온 고려인들이 지어 부른 것이 아리랑의 시초로 알려져 있다. 정선에서는 아리랑을 ‘아라리’라 부르곤 하는데 ‘(누가 내 마음을)알아주리오’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정선 레일바이크는 전국 레일바이크의 원조다. 구절리역에서 아우라지역까지 7.2㎞를 달린다.

 

 

정선 레일바이크는 전국 레일바이크의 원조다. 구절리역에서 아우라지역까지 7.2㎞를 달린다.

 

정선아리랑이 위대한 것은 입에서 입으로 내려오는 민요의 본령을 간직하고 있어서이다. 단일 곡조에 3000수가 넘는 가사가 전해오며, 현재까지 채록된 정선아리랑은 1200수가 넘는다. 이를테면 ‘아질아질 꽃베루 지루하다 성마령/지옥 같은 이 정선을 누굴 따라 여기 왔나’ 같은 대목은 답답한 두메에 갇혀 사는 정선 사람의 애환을 솔직하게 증언한다. 맞다. 가사의 ‘꽃베루’가 오늘 넘어왔던 그 벼랑 고개다.
 
아우라지역 왼쪽에 1983년 문을 연 ‘옥산장’이라는 식당 겸 여관이 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1994)에도 등장하는 옛날 여관이다. 주인 김옥매(81) 여사가 손님 앞에서 정선아리랑을 부른다. 앞 못 보는 시어머니 봉양하며 여관을 꾸려온 30여 년 세월이 구성진 아라리 가락에서 배어나온다. 잠은 안 자더라도 밥은 드시라고 권한다. 정선 향토음식이 밥상을 꽉 채운다. 참, 배우 원빈의 고향이 여량이다. 농사 짓는 부모의 집에 일본에서도 관광객이 찾아온다고 한다.
 
아우라지에서 길은 조양강 따라 구절리까지 이어진다. 아리랑 가락처럼 길이 유장하다. 구절리역 직전 해발 527m의 가물재를 넘을 때는 나도 모르게 아리랑 가락을 흥얼거렸다. 아우라지역에서 구절리역까지 운행하는 레일바이크 이야기는 3코스로 넘긴다.

[출처: 중앙일보] [올림픽 아리바우길 열리다] 아우라지 돌다리 건너며 아리랑, 꼬부랑 꽃벼루재 넘으며 아라리요 

 

 

노추산 아랫자락에 숨은 모정탑길. 올림픽 아리바우길이 발굴한 최고의 비경이다. 한 여성의 한스러웠던 26년 삶이 깊은 계곡에 어려 있다.

 

 

노추산 아랫자락에 숨은 모정탑길. 올림픽 아리바우길이 발굴한 최고의 비경이다. 한 여성의 한스러웠던 26년 삶이 깊은 계곡에 어려 있다.

 

길은 다시 기차역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이번 역은 다르다. 기차 없는 기차역이다. 그래도 사람은 미어터진다. 탄광 시절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북적댄다. 구절리역은 올림픽 아리바우길 3코스의 시작점이자 국내 최초의 레일바이크 탑승장이다. 이미 우리는 레일바이크가 익숙하다. 아우라지에서 걸어 올라오면서 수시로 마주쳤다.
 
1990년대 석탄산업이 기울면서 정선선 열차도 기력을 잃었다. 한국철도공사(지금의 코레일)는 2001년 11월 14일을 끝으로 증산역(지금의 민둥산역)과 구절리역을 왕복했던 비둘기호 열차 운행을 중단했다. 이날 정선선을 달린 1707호 열차는 한국 철도 역사 최후의 완행열차로 이름을 남겼다. 정선선 종점은 구절리역이지만, 아우라지역과 구절리역을 잇는 7.2㎞ 구간은 폐선이 됐다. 그 옛 기찻길에 레일바이크가 들어섰다. 2005년 6월 30일의 일이다.
 
정선 레일바이크는 폐선로를 활용한 국내 레저산업의 첫 성공사례다. 용도 폐기된 산업자원이 수익 높은 관광자원으로 거듭났다. 정선 레일바이크의 성공 이후 현재 전국에는 여남은 개 지역에서 레일바이크를 운영하고 있다. 솔직히 지금은 비슷한 게 너무 많아서 탈이다.
 
구절리역에서 북동쪽 하늘을 올려다보면 우람한 봉우리들이 강고한 벽처럼 늘어서 있다. 그 봉우리 중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가 노추산이다. 해발 1322m의 노추산은 강릉시 왕산면과 정선군 북면에 걸쳐져 있다. 백두대간 남쪽 줄기로 태백산맥에 든다. 이 크고 높은 산을 올림픽 아리바우길이 넘는다. 구절리역의 해발고도가 약 430m이니 약 900m 높이를 올라야 한다.
 
산에 들어갈 때는 정선 땅이었는데 나와 보니 강릉 땅이었다. 산에서 나오는데 꼬박 6시간이 걸렸다. 3코스는 올림픽 아리바우길 9개 코스 중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구간이다. 노추산 정상의 해발고도 1322m는 올림픽 아리바우길 전체 코스에서 가장 높은 고도이기도 하다.
 
노추산(魯鄒山). 이름이 어렵다. 신라시대 설총(655∼?)이 노나라의 공자와 추나라의 맹자를 기려 노추산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강원도 깊은 산에서의 공맹 타령이 뜬금없어 보이지만, 설총과 율곡 이이(1536∼84)가 노추산 자락에서 학문을 닦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정상 아래에 ‘이성대(二聖臺)’라는 사당이 있다. 노추산에 들어온 두 성현을 기려 한 강릉 주민이 50년쯤 전에 지은 것이다. 이성대에서 내다보는 산세가 압권이다. 날이 좋으면 멀리 태백의 매봉산(1303m)과 동해의 두타산(1353m)까지 보인다.
   

노추산 깊은 숲에서 올빼미를 만났다. 강릉과 정선을 가르는 노추산은 인적이 드물었다.

 

 

 

노추산 깊은 숲에서 올빼미를 만났다. 강릉과 정선을 가르는 노추산은 인적이 드물었다.

 

산은 인적이 없어 고요하다. 바위에는 이끼가 무성하고 길섶에는 버섯이 수두룩하다. 사람 무서운 줄 모르는 올빼미와 한동안 눈싸움을 하기도 했다. 정선 자락의 올라가는 길은 짙은 그늘의 숲길이고, 강릉 자락의 내려오는 길은 물소리 발랄한 계곡길이다. 산행이 힘들어도 지루하지는 않다. 계곡 물소리가 잠잠해질 즈음 상상도 못했던 비경이 모습을 드러낸다.
 
모정탑길. 할머니 혼자 돌탑을 쌓은 계곡길이라고 했다. 틀린 설명은 아니지만 눈앞의 장면을 설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돌탑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길이 500m가 넘는 계곡을 따라 어른 키 높이의 돌탑 수천 개가 촘촘히 서 있었다.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마을회의 오과현 사무국장이 돌탑에 얽힌 기막힌 사연을 들려줬다.
 
“강릉 시내에서 차순옥이라는 아주머니가 노추산 계곡에 들어와 돌탑을 쌓았다. 남편이 원인 모를 병에 걸리고 자녀도 병으로 죽는 등 우환이 끊이지 않았는데 돌탑 3000개를 쌓으면 가족이 평안하다는 꿈을 꾸고 계곡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계곡에서 움막을 짓고 26년 돌탑을 쌓다 2011년 돌아갔다. 66세였다. 지금은 돌탑이 4000개가 넘는다.”
 
여성 한 명이 이 엄청난 돌탑을 쌓았다는 것도 믿기 어려웠지만, 이 어처구니없는 비경이 여태 알려지지 않은 까닭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모정탑길은 올림픽 아리바우길이 발굴한 최고의 장관이었다. 모정탑길에서 나오면 노추산 산행도 끝난다. 긴 꿈을 꾼 것 같다.

[출처: 중앙일보] [올림픽 아리바우길 열리다] 1322m 노추산 넘어가니 눈물로 쌓은 어머니의 돌탑 3000개 

 

 

송천 물길을 따라 하염없이 거슬러 올랐다. 도암댐 어귀에서 내려다보니 내내 걸어왔던 숲길이 실은 거대한 협곡이었다. 길에서 나와야 제 걸어온 길이 보일 때가 있다.

 

 

 

송천 물길을 따라 하염없이 거슬러 올랐다. 도암댐 어귀에서 내려다보니 내내 걸어왔던 숲길이 실은 거대한 협곡이었다.

길에서 나와야 제 걸어온 길이 보일 때가 있다.

 

4코스는 배나드리마을에서 시작한다. 한자 이름은 선도리(船渡里). 배가 드나드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4코스를 걷는 건 배나드리마을의 이름을 풀이하는 일일지 모른다. 4코스는 안반데기를 오르는 마지막 2.7㎞ 구간을 제외하곤 내내 송천 물길을 곁에 둔다. 앞서 마치지 못한 정선 물길 이야기를 강릉 땅에 들어와서 끝맺는다.
 
1코스는 조양강 물길을 거슬러 올라왔다. 2코스는 아우라지까지 조양강이었고, 아우라지에서 구절리까지는 송천이었다. 3코스는 송천을 아랫도리에 두른 노추산을 올랐다 내려왔다. 산에서 내려왔으니 다시 강을 따라 걸을 차례다. 배나드리마을 앞을 흐르는 개천이 송천이다.
 
송천은 평창군 황병산(1407m) 계곡에서 흘러내려 정선군 구절리와 유천리를 지나 아우라지에 이르는 67.5㎞ 길이의 물길을 말한다. 송천이 아우라지에서 골지천을 만나면 조양강이 된다. 골지천은 태백시 금대봉(1418m) 계곡에서 발원해 아우라지에서 송천과 합칠 때까지 93.75㎞ 이어지는 물길이다. 조양강이 정선군 가수리에서 동대천을 받아들이면 동강이 된다. 동강이 영월에서 서강과 섞이면 남한강이라 불리고, 남한강이 두물머리에서 북한강과 어울려 한강을 이룬다.
 
그러니까 우리는 내내 한강의 조상을 좇아 걸어온 셈이다. 한강의 아버지(남한강)의 아버지(동강)의 아버지(조양강)의 아버지(송천)까지 찾아뵈러 이 먼길을 나선 것이다. 물은 하나인데 이렇게 이름이 많다. 이름이 많으니 사연도 많다. 옛날 한양 광나루까지 내려갔던 뗏목이 이 물길을 올라탔다. 배나드리마을이 옛날 떼꾼이 뗏목을 띄웠던 나루터 중에서 제일 북쪽의 나루터였다.
 
떼꾼의 역사는 1876년 경복궁 복원사업에서 시작한다. 임진왜란 때 불 타 없어진 경복궁을 복원하려면 강원도의 소나무가 필요했다. 뭍의 길이 변변치 못했던 시절, 물길만큼 신속한 원목 운반경로도 없었다. 남한강 천 리 길은 이렇게 열렸다.
 
떼꾼의 작업은 고단했고 또 위험했다. 남한강에는 황새여울·된꼬까리 같은 악명 높은 여울이 많았다. 하여 한 번 떼를 띄우면 큰 돈을 만질 수 있었다. ‘떼돈’이라는 말이 이 물길에서 비롯됐다. 떼꾼, 아니 떼돈을 기다리는 주막도 나루터마다 들어섰다. 동강 어라연의 ‘전산옥’은 정선아리랑에도 등장하는 전설적인 주막이다. ‘황새여울 된꼬까리 떼를 띄워 놓았네/만지산에 전산옥이야 술상 차려 놓게나.’ 그러니까 길 앞에서 행정구역은 부질없는 것이다. 강릉이면 어떻고, 정선이면 또 어떠한가. 그 물길이고 그 산자락인데. 아리랑 가락 또한 하나인데.  

 

4코스 송천 구간은 시멘트 포장이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길이 곱다.

 

 

 

4코스 송천 구간은 시멘트 포장이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길이 곱다.

 

송천 물길을 따라 이어진 길은 도암댐 앞까지 내내 곱고 편안하다. 시멘트 포장 구간이 대부분이지만, 숲길이 아늑해 피로를 못 느낀다. 길 왼쪽으로는 송천이 흐르고 오른쪽으로는 가파른 산이 서 있다. 저 산 위에 안반데기가 숨어 있다.
 
배나드리마을에서 도암댐 입구까지 약 10㎞나 이어지는 천변 길은 올림픽 아리바우길에서 손꼽히는 명품 구간이다. 봄에는 길가의 아름드리 신배나무가 흰 꽃을 흩뿌리고, 여름에는 짙은 녹음이 서늘한 그늘을 드리우고, 겨울에는 뽀드득뽀드득 소리 내는 포근한 눈길이 된다고 했다. 이 계절에는 발왕산(1458m) 자락에서 내려온 울긋불긋 단풍이 시야를 적신다. 안내판을 보니 2010년 길을 닦았다고 나와 있다. 자동차 도로라지만 통행량이 적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음 맞는 길동무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걷고 싶다.
 
도암댐 입구에서 내려다보이는 송천 계곡은 거대한 협곡이다. 로키산맥의 협곡이 부럽지 않은 장관이다. 도암댐 너머로 발왕산 정상의 용평스키장 곤돌라 타워도 살짝 보인다. 도암댐부터 평창 땅이다. 다시 말하지만 길 위에서 사람이 그은 경계는 무의미하다. 도암댐에 담긴 송천 물은 도암호라고 달리 불린다. 도암호를 돌아나온 길이 피골 어귀에서 산으로 들어간다. 여기에서부터 2.7㎞ 길이의 산길이 시작된다. 1시간 남짓 걸려 약 300m의 비고를 극복하면 산 위에서 놀라운 장면이 펼쳐진다.

[출처: 중앙일보] [올림픽 아리바우길 열리다] 송천 물길 돌고 도니 눈앞에 발왕산 올림픽 스키장 

 

 

안반데기는 사람이 일군 풍경이다. 해발 1000m 산 위에서 밭을 일군 생의 터전이다. 하여 눈물나도록 아름다운 현장이다. 안반데기의 배추밭은 배추를 수확한 뒤에도 아름답다.

 

 

 

 

안반데기는 사람이 일군 풍경이다. 해발 1000m 산 위에서 밭을 일군 생의 터전이다. 하여 눈물나도록 아름다운 현장이다.

안반데기의 배추밭은 배추를 수확한 뒤에도 아름답다.

 

안반데기에 오를 때마다 벅차오르는 가슴을 억누를 수가 없다. 장담하는데, 안반데기는 우리네 삶이 일군 가장 감동적인 풍경이다. 올림픽 아리바우길 지도를 처음 봤을 때 안반데기를 발견하고서 트레일의 진정성을 믿었다. 올림픽을 앞세운 반짝 이벤트가 허다한 요즘, 올림픽 아리바우길은 안반데기를 품어서 혹여 모를 오해에서 비켜날 수 있었다.
 
안반데기는 배추밭이다. 그래, 기껏해야 배추밭밖에 안 된다. 다만 다르다면, 배추밭이 들어선 자리다. 백두대간과 만나는 가파른 산비탈에 배추밭이 펼쳐져 있다. 1.95㎢ 면적으로 국내 고랭지 배추밭 가운데 가장 넓다. 1.95㎢ 면적이라면 감이 안 온다. 주민 수 2만6000명이 넘는 서울 옥수동이 딱 이만하다. 하도 넓어 시야가 배추밭을 다 담지 못한다. 해발 1000m의 안반데기는 국내에서 주민이 거주하는 가장 높은 지대이기도 하다. 현재 안반데기에서 배추 농사를 짓는 농가는 28가구다.
 
안반데기는 1965년 배추밭으로 조성되기 시작됐다. 박정희 정부는 강원도 산자락에 흩어져 살던 화전민들을 해발 1000m 산 위로 올려 보냈다. 직접 가꾼 땅은 가꾼 사람에게 돌려준다는 나라의 제안에 화전민은 솔깃했다. 그러나 자갈투성이 비탈을 일구는 건 쉽지 않았다. 식량은커녕 식수를 구하는 것도 어려웠다. 가을이면 도토리로 끼니를 때웠고, 겨울이면 밤새 내린 눈이 길을 지웠다. 눈 내린 다음날이면 헬리콥터가 날아와 음식을 던져줬다. 그 현장을 TV 뉴스가 꼬박꼬박 중계했다. 그러고 보니 96년 북한 잠수함 침투사건이 발발했을 때 북한군이 숨어들었던 강원도 깊은 자락도 안반데기였다.
 
요즘 들어서는 관광객의 발길이 잦아졌다. 비탈 심한 배추밭이 자아내는 이국적인 풍광 덕분이다. 안반데기에서는 추석 전에 배추를 수확한다. 하여 늦여름에 올라와야 산비탈의 배추를 사진에 담을 수 있다. 겨울에는 눈부신 설국으로 변신한다. 안반데기는 기록적인 폭설로 악명이 자자한 지역이다. 별자리를 찾거나 해맞이를 하러 안반데기를 오르는 사람도 많다. 마을에서 산촌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안반데기의 표기는 분명하지 않다. 안반덕·안반덕이 등이 섞여 쓰인다. 떡메로 쌀을 내리칠 때 쓰는 ‘안반’처럼 생긴 ‘덕’(산 위에 형성된 평평한 구릉지대)이라는 뜻으로, 안반데기는 강릉 사람이 부르는 이름이다. 행정구역은 강릉시 왕산면 대기4리에 속한다. 4코스 종점이자 5코스 시작점이 해발 1010m 피덕령이다. 배추밭은 해발 1000∼1200m 비탈에 자리한다.
   

능경봉 오르는 길. 백두대간 품 속이어서 숲이 깊다.

 

 

능경봉 오르는 길. 백두대간 품 속이어서 숲이 깊다.

 

5코스는 크게 두 구간으로 나뉜다. 안반데기 구간이 약 5㎞에 이르고, 나머지 약 7㎞ 구간은 백두대간이다. 안반데기를 지도에서 보면 남북 방향으로 날개를 편 나비처럼 생겼는데, 북쪽 끄트머리에 고루포기산(1238m)으로 연결되는 오솔길이 있다. 고루포기산에서 능경봉(1123m)을 거쳐 대관령 휴게소(835m)까지 올림픽 아리바우길은 백두대간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는다. 이 7㎞ 남짓한 산길이 올림픽 아리바우길에서 유일한 백두대간 구간이다.
 
백두대간에 드는 일은 여느 산행과 의미가 다르다. 백두대간이 한반도의 등뼈를 이루는 산줄기이어서이다. 산세를 개별 봉우리가 아니라 하나의 흐름으로 파악하는 것은 우리만의 문화다. 그것도 그 뿌리가 백두산이다. 우리 민족은 산에서도 관계와 맥락을 읽어낸다. 하여 우리는 산을 오르지 않는다. 산에 든다. 백두대간 산행은 평범한 경험이 아니지만, 일단 대간에 들면 그리 고달프지 않다. 무난한 경사의 산마루를 따라 숲길이 이어진다.
 
5코스는 올림픽 아리바우길 중에서 가장 높은 지대를 통과한다. 그러나 난이도는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백두대간 구간은 강릉과 평창의 경계이지만, 행정구역은 평창에 속한다. 횡계 전망대에서는 평창 쪽이, 능경봉 전망대에서는 강릉 쪽이 내다보인다.

[출처: 중앙일보] [올림픽 아리바우길 열리다] 해발 1000m 안반데기, 배추밭 능선에 올라서자 숨이 막혔다 

 

 

대관령 아흔아홉 굽이를 돌고 돌아 내려오면 강릉이다. 대관령 반정에서 드론을 띄웠다. 어제와 오늘의 고속도로가 겹쳐지듯 지나갔고, 사람의 길은 단풍 물든 숲 안에 숨어 보이지 않았다.

 

 

 

대관령 아흔아홉 굽이를 돌고 돌아 내려오면 강릉이다. 대관령 반정에서 드론을 띄웠다.

어제와 오늘의 고속도로가 겹쳐지듯 지나갔고, 사람의 길은 단풍 물든 숲 안에 숨어 보이지 않았다.

 

6코스는 주제가 분명한 구간이다. 대관령을 터덜터덜 내려와 고개 아랫마을에 들어서면 길이 끝난다. 내내 내리막이 이어진다. 6코스 시작점 대관령(835m)에서 종점 보현사 버스종점(220m)까지 약 600m의 비고가 있다. 꼭 걸어 내려오길 권한다. 대관령옛길을 고스란히 품고 있어서이다.
 
대관령옛길은 스스로 문화재다. 문화유산을 찾아가는 길이 아니라 길 자체가 문화유산이다. 대관령옛길 약 6.3㎞ 구간이 명승 제74호로 지정돼 있다. 대관령(大關嶺)이라는 이름도 예사롭지 않다. ‘큰 대(大)’ 자는 함부로 붙이는 것이 아니다. 지리적 경계를 넘어 성스러운 장소라는 의미가 더해져 있다. 영동·영서·관동과 같은 지명도 대관령에서 유래했다.
 
대관령 휴게소에서 백두대간 옆의 오솔길을 따라 2.5㎞를 나아가면 제법 널찍한 터가 나타난다. 재궁골 신터로, 산신과 국사성황신을 모시는 신당 두 곳이 있다. 산신(山神)은 김유신(595~673) 장군이고, 국사성황신(國師城隍神)은 범일국사(810~889)다. 강릉단오제는 두 신에게 제를 지내는 의식에서 시작한다.
 
강릉단오제는 대관령 치제(致祭)에서 비롯됐다. 조선 광해군 때 쓰인 『임영지』에 최초의 기록이 있다. ‘936년 강릉에 사는 왕순식이 태조 왕건을 도우려 병사를 이끌고 원주로 향할 때 대관령에 있는 사당에서 제사를 지냈다. 전쟁에서 이긴 뒤로 계속 제사를 지낸다’는 구절이다. 이 기록이 강릉단오제의 기원과 함께 대관령의 유래도 설명한다.
 
강릉단오제는 2005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아리랑이야 민족 고유의 가락이므로 별문제가 없었지만, 단오제는 한국·일본·중국 등 동북아시아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풍속이어서 중국의 반발이 있었다. 그러나 유네스코는 강릉의 손을 들어줬다. 강릉에서만 단오제를 지켜왔기 때문이다. 파종을 끝낸 강릉 사람들이 액막이 제사를 지내고 한바탕 노는 세시풍속으로서 단오제는 면면히 내려왔다. 김동찬 ㈔강릉단오제위원회 상임이사의 기억이다.
 
“단옷날이 다가오면 어머니는 시장에서 쓰려고 돈을 모았고, 아버지는 회사에서 단오 보너스를 타왔어요. 동네 어르신은 심청굿을 보며 소원을 빌었고요. 1년 중에 가장 큰 장이 서는 날이 단오였어요.”
 
국사성황당에서 길은 대관령을 내려간다. 반정까지 꼬불꼬불한 숲길이 이어진다. ‘대관령 아흔아홉 굽이’라는 말이 있다. 강릉 선비가 과거를 보러 대관령을 넘을 때 곶감 100개를 챙겨 굽이를 지날 때마다 하나씩 꺼내 먹었는데 정상에 오르니 하나만 남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길은 구덩이 모양 깊이 패어 있다. 길이 한없이 휜 것도, 크게 팬 것도 애오라지 사람의 흔적이다. 흉터일 수도, 주름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대관령 신당에서 산신에게 제를 지내는 의식과 함께 강릉단오제가 시작한다.

 

 

대관령 신당에서 산신에게 제를 지내는 의식과 함께 강릉단오제가 시작한다.


길은 옛 영동고속도로(456번 지방도로)를 지나 반정(半程)에 다다른다. 강릉시 구산면과 평창군 횡계면(지금의 대관령면)의 중간이어서 반정이다. 반정은 강릉 시내와 동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대관령 최고의 전망 포인트다. 봇짐장수도, 소금장수도, 과거 보러 가는 선비도, 과거에서 또 떨어진 선비도 여기에 서서 제 길을 내려봤을 터이다.
 
반정에서 길은 다시 숲으로 들어간다. 꼬부랑꼬부랑 흙길도 다시 이어진다. 굽이가 많아 경사가 급하지 않다. 그래, 힘들면 돌아가면 된다. 길은 늘 세상 사는 이치를 일러준다. 반정에서 3㎞ 남짓 숲길을 걸으면 주막터가 나온다. 2008년 강릉시가 복원한 쉼터로 음식을 팔지는 않는다. 주막터부터 경쾌한 물소리가 부지런히 쫓아온다.
 
다시 3㎞ 즈음을 내려오니 길 왼편에 우주선 모양의 화장실이 나타난다. 대관령옛길이 끝나는 지점이다. 여기는 ‘원울이터’라는 이름이 내려온다. 이름 그대로 ‘원님이 울던 데’라는 뜻이다. 강릉 부사가 부임할 때는 길이 험해서 울었고, 임기를 마치고 돌아갈 때는 서운해서 울었다고 한다.
 
대관령옛길은 끝나도 올림픽 아리바우길은 아직 남았다. 마을길을 따라 4㎞ 남짓 더 나아가 보현사 어귀에 있는 버스 종점에 도착해야 6코스가 마무리된다.

[출처: 중앙일보] [올림픽 아리바우길 열리다] 숲의 바다를 가르는 세 갈래 길, 여기는 대관령 꼭대기 

 

 

올림픽 아리바우길 7코스는 금강소나무와 내내 함께한다. 어명정에서 술잔바위 가는 길 비탈을 따라 엄청난 규모의 금강소나무 군락지가 있었다. 소나무 아래가 송이버섯 밭이다.

 

 

 

올림픽 아리바우길 7코스는 금강소나무와 내내 함께한다.

어명정에서 술잔바위 가는 길 비탈을 따라 엄청난 규모의 금강소나무 군락지가 있었다.

소나무 아래가 송이버섯 밭이다.

 

올림픽 아리바우길 강릉 구간은 기존의 강릉바우길과 길을 공유한다. 코스로 보면 6코스부터 9코스까지다. 올림픽 아리바우길 6코스는 강릉바우길 2코스, 올림픽 아리바우길 7코스는 강릉바우길 3코스, 올림픽 아리바우길 8코스는 강릉바우길 10코스, 올림픽 아리바우길 9코스는 강릉바우길 11코스에 해당한다.
 
올림픽 아리바우길 이정표가 강릉바우길 이정표보다 아직은 드문 형편이어서, 강릉에 들어서면 강릉바우길 이정표를 보고 걷는 것이 편할 수 있다. 대신 주의할 점이 있다. 강릉바우길은 2009년 조성했다. 그때와 지금의 표기가 다른 경우가 종종 있다. 이를테면 ‘보광리 게스트하우스’라고 적힌 안내판이 군데군데 서 있다. 강릉바우길 게스트하우스를 이르는 것인데, 성산면 보광리의 게스트하우스는 폐쇄된 지 오래다. 현재 강릉바우길 게스트하우스는 강릉 시내(임영동)에 있다.
 
강릉바우길에는 코스마다 작은 제목이 있다. 강릉바우길 3코스, 즉 올림픽 아리바우길 7코스의 부제가 ‘어명 받은 소나무길’이다. 올림픽 아리바우길 7코스는 부제처럼 소나무 숲에서 온종일 거니는 길이다. 경북 울진의 금강소나무숲길 버금가는 명품 송림길이라 할 수 있다.
 
보현사 입구에서 길은 산으로 들어간다. 임도 옆으로 붉은 흙길이 나 있다. 숲에 드니 온통 소나무다. 소나무도 보통 소나무가 아니다. 반듯하고 잘생긴 금강소나무다. 금강소나무는 백두대간에서 뻗어나온 산자락에 서식한다. 길은 7코스 초입에서 백두대간을 내려왔지만, 산은 여전히 백두대간의 식생을 품고 있다.
 
온몸에 솔향이 배는 기분이 들 때쯤 흥미로운 장면이 펼쳐진다. 길 왼편으로 소나무가, 오른편으로 굴참나무·갈참나무 등 참나무가 마주보고 서 있다. 자연 그대로의 숲은 아니다. 붉은 길을 사이에 두고 두 종류의 나무가 500m 이상 스스로 도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근래에 심은 것도 아니다. 소나무와 참나무 모두 하늘을 가릴 만큼 높고 크다.
 
숲에서 빠져나오니 임도다. 임도는 의외로 널찍하다.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폭이다. 평소에는 보현사 입구에서 자동차를 막지만, 명절 기간에는 성묘객을 위해 길을 열어놓는다고 한다. 10분쯤 걸었을까. 모퉁이를 돌아서자 길가에 선 정자가 보인다. 어명정(御命亭)이다. 어명정은 원래 아름드리 노송이 있던 자리다. 2007년 11월 29일 광화문 복원을 위해 벌채한 소나무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명정. 2007년 광화문 복원을 위해 벌채한 소나무가 서 있던 자리에 있다

 

  

어명정. 2007년 광화문 복원을 위해 벌채한 소나무가 서 있던 자리에 있다

 

정자 복판에 그때 베어낸 금강소나무 세 그루의 그루터기가 있다. 지름이 90㎝나 되는 대경목(大莖木)이다. 안내문에 ‘금강소나무 벌채를 위해 교지를 내리고 위령제를 지낸 뒤 대경목을 베고 묘목을 심었다’고 적혀 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유홍준 교수가 문화재청장일 때 당시 산림청장과 함께 “어명이오!”라고 외치고 도끼를 내렸다고 한다.
 
올림픽 아리바우길은 어명정에서 다시 산길로 접어든다. 멧돼지들이 진흙 목욕을 한다는 ‘멧돼지 쉼터’를 지나고 비탈을 따라 늘어선 엄청난 규모의 금강소나무 군락지를 지나면 마루금에 놓인 펑퍼짐한 바위가 나타난다. 술잔바위다. 바위 위에 술잔처럼 생긴 동그란 구멍이 세 개 파여 있다. 술잔바위에서 선자령 북쪽 백두대간이 내다보인다. 시선 왼쪽의 봉우리가 곤신봉(1131m)이고, 풍력발전기 늘어선 능선의 봉우리가 매봉(1173m)이다. 매봉 너머에 대관령 삼양목장이 있다.
 
술잔바위에서 완만한 내리막이 이어진다. 아직도 소나무 숲이다. 이제 몸에서도 솔향이 풍기는 것 같다. 소나무에 대해서 다시 생각했다. 우리는 소나무와 더불어 살았다. 태어나면 금줄에 솔가지를 꽂았고, 소나무로 지은 집에 살았고, 솔잎과 솔방울로 아궁이를 지폈고, 송진을 긁어내 불을 살렸고, 솔방울을 따 술을 담갔고, 죽어서는 소나무로 짠 관에 들어가 누웠다. 고향 같이, 아니 무덤 같이 편안한 길이었다. 명주군왕릉에서 7코스가 끝난다. 여기도 죄 소나무다.

[출처: 중앙일보] [올림픽 아리바우길 열리다] 금강송과 나란히 걸은 삼십 리 길 … 온몸에 솔향이 스몄다 

 

 

 

고개에서 내려온 길은 마을을 지난다. 대관령 아랫마을이다. 산은 많이 낮아졌지만 숲은 여전히 깊다. 고속도로 아랫마을 위촌리를 하늘에서 내려다봤다.

 

 

 

고개에서 내려온 길은 마을을 지난다. 대관령 아랫마을이다.

산은 많이 낮아졌지만 숲은 여전히 깊다. 고속도로 아랫마을 위촌리를 하늘에서 내려다봤다.

 

8코스는 명주군왕릉에서 시작한다. 왕릉이면 왕릉이지, 명주군왕릉은 무엇일까. 명주(溟州)는 신라시대 강릉을 부르던 지명이다. 그런데 여느 지명과는 차원이 다르다. 신라 원성왕(재위 785∼798)이 재위하자 또 다른 왕위 계승자 후보였던 왕족 김주원이 명주로 물러났다. 원성왕은 반란을 염려해 김주원에게 명주의 왕으로 봉했고, 김주원은 이후 강릉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명주군의 왕이 잠든 곳이어서 명주군왕릉이다. 신라시대 강릉은 자신만의 왕이 따로 있었다.
 
강릉은 원래 고구려 땅이었다(그때 지명이 ‘하슬라’다). 이후에는 신라에 속했지만 신라 왕조도 따로 왕을 둘 만큼 거리를 뒀다. 강릉은 서울하고도 멀었다. 오랜 세월 대관령은 넘지 못할 벽이었다. 하여 강릉은 바깥 세상과 단절된 채 고유한 문화를 지킬 수 있었다. 단오제의 풍속이 강릉에서만 계승된 까닭이다.
 
고립된 땅이었으나 강릉은 사람이 살기에 좋은 고장이었다. ‘동대문 밖이 강릉’이라는 옛말도 있거니와 ‘평생 대관령 한 번 넘지 않고 죽는 것만큼 복도 없다’는 말에서도 강릉 특유의 정서를 짐작할 수 있다. 8코스에서 강릉의 역사를 살피는 이유가 있다. 8코스의 주제가 강릉 사람이다.
 
대굴령이라는 지명을 아시는지. 물론 대관령에서 나왔다. 데굴데굴 굴러서 대굴령이라는 강릉 사람의 우스개다. 하여 지도에는 없다. 그러나 마을은 있다. 대굴령마을은 대관령옛길 아랫마을인 어흘리와 올림픽 아리바우길 7, 8코스가 지나는 보광 1, 2리 세 마을이 구성한 영농조합의 이름이다. 세 마을은 대굴령마을이라는 이름을 나눠 쓰며 농·산촌 체험프로그램을 함께 꾸린다.
 
8코스는 크게 숲길과 마을길로 구분되는데, 숲길은 내내 익숙했던 송림길이다. 다른 건 마을길이다. 올림픽 아리바우길은 3코스에서 노추산을 오른 뒤로 좀처럼 마을로 들어가지 않았다. 대관령을 품은 백두대간 자락이 그만큼 크고 높았다. 고개를 내려와서야 비로소 길은 우리네 일상으로 들어온다.
 
올림픽 아리바우길 8코스를 ‘심스테파노길’이라고도 부른다. 병인박해(1866) 때 순교한 심스테파노가 살았다는 ‘강릉 골아위’가 ‘골아우(지금의 경암동)’라는 주장에서 유래했다. 심스테파노는 천주교 순교자 877명 중에서 유일한 강릉 출신이다. 8코스 중간께 마을이 경암동이다. 8코스에는 신당도 많다. 승천사와 법륜사는 사찰이 아니라 신당이다. 신이 깃든 고개의 아랫마을이니 어쩌면 당연한 풍경이다.
 
마을로 내려온 길은 걷기에 편했다. 숲은 깊었지만 산은 험하지 않았다. 솔바우 전망대 오르는 길은 야자매트가 깔렸고, 내려가는 길은 계단이 놓였다. 전망대에도 데크로드가 설치됐다. 올림픽 아리바우길을 조성하면서 새로 들인 시설이다. 솔바우 전망대에서 강릉 시내가 훤히 보인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가 눈에 밟힌다. 까마득한 높이의 교각이 고속도로를 떠받치고 있다. 8코스가 영동고속도로와 동해고속도로 아래를 통과한다.
 
8코스가 막바지에 이를 즈음 ‘우추리’라는 마을 간판이 나타난다. 강릉 사람이 위촌리를 부르는 이름이다. 도배(都拜)마을이라고도 한다. 절 하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위촌리에서는 온 주민이 모여 촌장에게 세배를 올린다. 율곡 이이(1536∼84)의 마을 대동계가 전승되는 유일한 고장이다. 현재 촌장은 1926년생 박철동 옹이다.  

 

위촌리에서는 설날이 되면 온 주민이 모여 촌장에게 세배를 올린다.

 

 

 

위촌리에서는 설날이 되면 온 주민이 모여 촌장에게 세배를 올린다.

 

“설 이튿날 촌장님께 세배하러 갑니다. 마을에서 촌장님을 가마로 모셔오지요. 합동으로 세배를 올리고 마을 사람끼리도 세배를 합니다. 원래는 설날 세배를 올렸는데 일제가 막아서 이튿날로 옮긴 전통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위촌리가 고향인 소설가 이순원은 “위촌리에서는 가정마다 대동계 향약의 4대 강목이 걸려 있다”고 덧붙였다. 덕업상권(德業相勸), 과실상규(過失相規), 예속상교(禮俗相交), 환난상휼(患難相恤). 학창시절 뜻도 모르고 외웠던 문구가 우추리에는 집집마다 걸려 있단다. 길은 우리가 잊고 살았던 무언가를 종종 일깨운다. 위촌리를 벗어난 8코스는 송양초등학교에서 9코스와 만난다.

[출처: 중앙일보] [올림픽 아리바우길 열리다] 물 건너 고개 넘어 길은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마침내 대장정이 끝났다. 131.7㎞ 길이 끝나는 자리에는 푸른 바다가 있었고, 푸른 바다는 붉은 해를 토해냈다. 강문해변의 일출은 길었던 여정을 마무리하는 하나의 의식이었다.

 

 

 

마침내 대장정이 끝났다. 131.7㎞ 길이 끝나는 자리에는 푸른 바다가 있었고, 푸른 바다는 붉은 해를 토해냈다.

강문해변의 일출은 길었던 여정을 마무리하는 하나의 의식이었다.

 

드디어 마지막 구간이다. 심심산골의 장터에서 시작한 길이 강을 거슬러 오르고 백두대간을 지나고 큰 고개를 넘어 바다 앞에서 마무리된다. 올림픽 아리바우길 9코스는 강릉 시내로 들어와 경포호수를 따라 걸은 뒤 강문해변에서 끝난다. 길이 끝나는 자리에 바다가 있다. 그래서 좋다.
 
8코스 종점 송양초등학교에서 시작한 길은 야트막한 산을 넘어 죽헌저수지로 이어진다. 강태공 몇몇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배스가 제법 올라온다고 했다. 죽헌저수지를 돌아나온 길이 강릉 시내로 들어선다. 죽헌저수지 지나 오죽헌까지 1시간 정도 걸린다.
 
오죽헌(烏竹軒)에 들어선다. 신사임당(1504 ~51)의 친정이다. 사임당이 예서 용꿈을 꾸고 아들 율곡 이이(1536∼84)를 낳았다. 이름처럼 검은 대나무가 자란다. 보물 제165호다. 유서 깊은 장소는 분명하지만 성지처럼 꾸민 모양은 마뜩찮다. ‘세계 최초 모자(母子) 화폐 인물 탄생지’라는 안내판 앞에서는 쓴웃음을 지었다.
 
사임당을 현모양처로 기억하는 것은 아들 율곡의 명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아홉 번 치른 과거 모두 장원을 차지한 천재, 온갖 벼슬을 두루 거친 관료, 조선을 통틀어 가장 많은 상소를 올린 정치인, 조선 성리학을 완성한 대학자의 어머니이기에 마땅한 대우일 수 있겠다.
 
하나 사임당에 대한 평가는 인색했다고 인정해야 한다. 대관령 반정에 서 있는 시비만 봐도 알 수 있다. ‘늙으신 어머니를 고향에 두고/외로이 서울로 가는 이 마음/돌아보니 북촌은 아득도 한데/흰 구름만 저문 산을 날아 내리네.’ 강릉 친정에서 서울 시댁으로 가는 길 사임당이 남긴 칠언절구 한시다. 대관령을 읊은 허다한 시문 중에 최고로 꼽힌다.  
 
오죽헌 지나 선교장이다. 선교장은 관동 제일 사대부가의 가옥이다. 99칸으로 국내 전통가옥 중에서 가장 크다. 세종의 둘째 형 효령대군의 11대 손 이내번(1708∼81)이 약 300년 전에 터를 잡았다.
   

오죽헌. 신사임당의 친정으로 율곡 이이가 태어난 곳이다.

 

 

 

오죽헌. 신사임당의 친정으로 율곡 이이가 태어난 곳이다.

 

선교장이 각별한 건 주인네의 마음씨 때문이다. 대지주였으면서도 농민들이 굶지 않도록 보살펴 지역의 존경을 받았다. 금강산 유랑에 나선 수많은 묵객도 공짜로 먹이고 재웠다. 흥선대원군(1820∼98), 추사 김정희(1786~1856) 등이 선교장에서 대접을 받고 글씨와 그림을 남겼다. 이강백 관장이 들려준 일화 가운데 하나만 소개한다. 손님이 이제 그만 가기를 바라면 밥상에 차려놓은 반찬그릇의 자리를 바꿨다고 한다.
 
선교장은 원래 경포호수에 접해 있었다. 지금은 물이 많이 빠져 경포호수의 둘레가 4㎞밖에 안 되지만, 선교장이 들어선 18세기에는 둘레가 12㎞나 됐다. 선교장(船橋莊)도 배다리마을이라는 옛 지명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강릉 하면 경포(鏡浦)다. 이름대로 거울처럼 맑은 호수다. 관동의 허다한 명승 중에서 경포는 늘 맨 앞자리에 있었다. 강릉에는 보름달이 다섯 개 뜬다는 옛말처럼 경포호수 품은 강릉의 밤은 로맨틱하다. 호수를 두른 탐방로도 잘 나 있고, 가시연 습지도 정성껏 조성돼 있다. 9코스가 경포호수의 절반 정도를 에운다.
 
길은 바다로 가기 전에 부러 한 곳을 들렀다 나온다. 허난설헌 생가터다. 허난설헌(1563∼89)은 『홍길동전』을 쓴 허균(1569∼1618)의 누이다. 허난설헌은 스물일곱 살에 요절한 불운의 시인이었다. 그의 시편은 그가 죽은 뒤 명나라에 전해졌고 명나라 시인들의 극찬을 받았다. 허난설헌 생가터에서 뜬금없이 오죽헌이 떠올랐다. 얼추 비슷한 시기 경포호수 맞은편에서 살았던 두 여인의 운명이 달라도 너무 달라서였다. 허난설헌의 고향이 두부로 유명한 초당이다. 초당에서는 바닷물로 간수를 써 두부를 만든다.
 
마침내 바다다.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다. 강문 솟대다리 앞 백사장이 131.7㎞ 올림픽 아리바우길의 종점이다. 고개를 돌리니 경포 너머로 벽처럼 늘어선 백두대간이 보인다. 저 산 너머 강가에서 시작한 걸음이었다. 길을 걷는 것은 인연을 쌓는 일이다. 지구촌 최대 축제 올림픽도 결국은 인연을 맺는 일일 터이다. 잔치는 끝나도 길은 영영 남을 것이다.

[출처: 중앙일보] [올림픽 아리바우길 열리다] 길이 끝나는 자리, 해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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