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8월 논산훈련소였다. 빨간 모자를 눈썹까지 푹 눌러쓰고 훈련병을 무섭게 닦달하던 독수리 조교는,
나를 ‘ 비탈 ’ 이라 불렀다. 조교가 “야, 비탈!” 하면 차렷 자세로“예, 훈병 김 비탈” 이라고 큰소리로 관등성명을 댔다. 깡말랐던 깍두기 조교 역시 “강원도 비탈들은 산골짜기를 돌아다녀서 행군과 각개전투도 잘 한다” 고
비아냥거렸다. 사회생활을 할 때에도 산타는 모습을 보고 “혹시 고향이 강원도가 아니냐?”고 묻는 자가 있었다. 강원도 소주도 한 때 ‘山’ 이었다.
그동안 ‘비 ’ ‘감자바우’로 불리던 강원도의 산은 관광지와 휴양지가 되었고 비탈은 고랭지채소를 재배하는 금싸라기 땅이 되었다. 강릉시 왕산면 안반데기 마을은 돌멩이 뿐이던 산비탈이 어떻게 고랭지 채소밭이 되었고, 어떻게 유명 관광지가 되었는지 한 눈에 알 수 있는 상전벽해(桑田碧海)의 현장이다. 한 번 와보면 금방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